호주에서 쏘아올린 전기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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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민 이야기

1년간의 질롱 이야기

ozelectrician 2023. 9. 4.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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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즈매니아의 4년 생활을 마치고 2022년 2월 한국을 5년만에 방문했다. 2달간의 달콤한 휴가를 보내고 호주로 돌아왔지만, 영주권이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지방지역에서 계속 머물러야 했다. 나의 리스트에는 2곳이 있었다. 질롱과 브리즈번 외각지역. 그중 선택한 곳이 질롱이었다. 예전에 멜버른에 머무르며 질롱을 몇차례 방문했을때는 굉장히 시골 지역으로 생각했으나 다시 방문했을때는 지난 4년전보다 많이 발전한 모습이였다. Westfield 쇼핑센터도 있어 생활에는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질롱을 선택한 이유중 하나가 공장지역이 많아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 보였다. 하지만 한국에서 머물며 많은곳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연락오는 곳이 없었다. 내가 찾는 일은 공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호주에 입국하자마자 다음날 바로 한군데에서 연락이 왔었다. 그곳은 콘크리트 파이프를 만드는 공장이었다. 시급도 다른곳에 비해 굉장히 높았고,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공장이여서 그런지 일하는 환경자체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호주에 돌아온 바로 다음날 인터뷰를 위해 공장에 방문하였고 바로 채용이되어 출근하게 되었다. 처음 시작한 일은 Factory labourer로 기계를 청소하고, 다 만들어진 콘크리트 파이프를 다듬어주는 일이었다. 캐쥬얼로 일을 시작했지만 주5일 쉬프트가 꼬박꼬박 나왔다. 처음 3개월 정도는 단순 작업을 하였고, 그다음으로 한 일이 기계 조작하는 일이었다. 콘크리트 파이프를 만들기 위해서는 Cage machine이라고 콘크리트 파이프 안에 들어가는 철근을 만드는 기계를 조작하는 일이었다. 공장에 있던 기계중 하나가 한국에서 들여온 기계여서 아마 나를 채용하고 그곳에 일을 시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위와 같은 기계를 다룬지 2~3개월이 지나고 나서는 포크리프트 오퍼레이터로 일을 했다. 콘크리트 파이프를 만들기 위해서는 거대한 틀 안에 철근 케이지를 넣고 틀과 함께 기계에 넣으면 알아서 콘크리트 파이프를 만들어준다. 크기가 워낙 크다보니 틀을 기계에 넣고, 빼고, 말리는 곳에 놓는 작업을 포크리프트로 한다. 그동안 포크리프트 경력이 많았던 나에게는 1주일정도 지나자 어느정도 손에 익게 되었다. 그러다 공장이 바빠지며 Night shift로 들어가 사람을 뽑았었고, 공장 매니저가 나에게 밤근무로 들어가는게 어떻겠냐고 물어보았다. 시급도 25%를 더주기 때문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밤근무를 시작하고 계속 포크리프트 오퍼레이터로 일을하였다. 낮 2시 반에 시작해서 밤 12시에 끝나기 때문에 생활 패턴에도 그렇게 큰 영향을 주지않아 아주 괜찮았다. 

호주의 가장 큰 장점은 일을 열심히 하면 그만큼 기회도 많이 준다. 포크리프트 오퍼레이터가 어느정도 지겨워 질때쯤 매니저가 콘크리트 파이프를 만드는 기계 오퍼레이터로 일해보라고 권유하여 약 1달~2달정도 트레이닝을 받으며 일했다. 기계를 조작하고 하는것들이 예전에 한국에 있을때 공장 maintenance engineer로 일한 경험이 있어 빠르게 습득할 수 있었다. 

매일 생산이 끝나면 기계안에 들어가 남아있는 콘크리트를 부수고 삽으로 퍼내는 일을 해야했는데, 이것이 하루중 가장 힘든 일이었다. 일단 생산이 들어가면 기계앞에서 트러블 슈팅만 하면 되어 육체적으로 힘든일은 없지만 하루에 2시간정도를 Jack Hammer 콘크리트를 부수고 삽질하다보면 온몸이 땀으로 범법되기도 하고 코안이 콘크리트 먼지로 가득찬다. 

 

내가 질롱에서 1년동안 했던 일은 대충 이런것들이었고, 질롱의 생활면을 생각해보면 제대로된 한인마트가 없어서 멜버른에 가끔 나올때 엄청 사들고 갔었다. 한국 식당도 몇군데 있긴 하지만 매번 외식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이기도 하고 다양하지 못하다. 하지만 장점으로는 대부분의 시골지역이 그렇지만, 교통체증이 없고 방값이 싸다는것에 있다. 

 

그렇게 1년의 질롱 생활을 마치고 영주권을 받자마자 바로 멜버른으로 넘어왔다.